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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이래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폭넓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으로 펴낸 회고록이다. 달리는 소설가로 불리우는 하루키가 달리기를 축으로 인생과 문학에 대해 품고있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계속 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끌어내어 '달리기'라는 테마를 통해 정직하게 들려준다. 하루키는 전업 소설가로서 살아가고자 결심한 전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후 생활의 일부가 될만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기를 이어왔다. 이 책에서는 하루키 데뷔 30주년에 즈음하여 어떻게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시작과 진행 과정을 밝혔다. 장편 11권, 단편 소설집 15권을 비롯하여 90여 종의 작품을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꾸준한 달리기였다.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처음 시작한 달리기는 하루키에게 강인한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선사했다. <양장본>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문학사상
출판일
2016.12.15

1회독


 

 

11월 15일(화)

 

내가 달렸던것은 한 여름의 아테네였다.

 하루키 특유의 독창적인 묘사로 표현 한 아테네의 도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테네의 도로에 나도 숨막히듯 서있는 듯했다.

 

101p

아니 , 맥주는 생각하지 말자 태양에 관한 생각도 하지 말기로 하자. 바람도 잊어버리자. 기사 쓸일도 잊어버리자. 다리를 번갈아가며 앞으로 내 딛는 것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그것 말고는 지금 당장 급박한 문제는 없다.
어떤일에 집중할때의 괴로움은 필수불가결의 문제인것 같다. 그럴때면 잡생각이 들기도하고 급하지 않은 일들 역시 급하게 느껴지기도 하며내가 지금 집중해야할 문제에 정신이 분산되기도 한다.
나 역시 달리기를 할때 느낀것이 있다면, 집중하는것에 의식이 쏠리곤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달릴 때 느껴지는 거친숨, 다리의 고통에 집중하면 한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반면에 달리는 동안 듣고있는 노래가사나 메시지에 집중하면 그 메시지의 뜻에 대해 생각해본다.
체력이 다하며 인간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 순간, 우리가 집중해야할것은 당장 하고 있는 일 바로 그것일것이다.

 


103p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지날 때, 이후의 기쁨을 상상하며 그 고통을 이겨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 기쁨을 목도했을 때 어땠는가 생각보다 그 기쁨은 오래가지도 않고 또 그리 크지도 않다.
어쩌면 우리가 그 힘든 고난속에서 떠올려야할 기쁨은 다가올 보상이 아닌 그 고통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115p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 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것을 그만둘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우리에게 가능한것은 그 '아주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는 이미 운동이라는 단련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발자의 삶을 살아가며, 또 다른 단련해야할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힘들어서 또는 피곤해서 집중하기 어려워서 많은 이유로 포기하는 지난 날을에 대해 다시 반성하며 앞으로 개발자로서 살아가며 내가 빈틈없이 채워가며 단련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11월 17일(목)

121p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중략)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 받는 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중략)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 호흡법으로 비유해보면 집중하는 것이 그저 가만히 깊게 숨을 참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숨을 지속하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호흡해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작업이다.
(중략)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비단 소설을 쓰는 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 순간적인 번뜩임이 필요한 예술같은 분야도 있겠지만..) 특히 개발일의 경우는 짧은 기간의 무언가를 쏟아붓는기보다. 끊임없는 문제와 해결을 지속적으로 반복해나가는 일의 연속일것이다.
이러한 일을 지속해 나가는 힘은 집중력과 지속력
그리고 이것은 운동처럼 쌓아가듯 집중하여 몸에 배게 할 수 있다.

126p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고 ,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뭐든지 적당히라는 말이 있다. 부족하지않게 혹은 또는 과하지 않게 양 극단의 그 중간쯤의 어느지점에서의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좋을지  잡기가 어려운 시점이 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어쩌면 명확한 답이 없는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고 답하며 균형을 잡아가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127p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중략)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한것이다.
열심히 한다 열심히 산다. 하지만 이런 삶에 의문을 받을 때면 제대로된 대답을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진리에 가깝다 여기며 당연하게 여겨오는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것이다.
모든 일에 하는 만큼의 보상이 있지 않고, 노력만큼의 성과가 생기지 않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사람은 의미없는 일을 최소화 하는 것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일이라고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묵묵히 달리는 러너의 삶은 달리는 것은 어떠한 가시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목적지향적인 삶이기보다 뛴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안에서 한계를 마주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또 때로는 극복하며 자신을 건강히 불태우는 일 그렇게 그것을 확인해 가는 삶.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지향하며 이것에 더욱 당당해지기로 했다.

11월 18일(금)

 

147p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다
요즘의 사회적 우울감은 열등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유경제의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정보매체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허물었다.
다른사람의 삶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거나 그 대상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고 우열을 매기며 열등감을 느끼고 나아가 큰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다른사람을 보는 시선을 어떻게 마음먹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좋고 나쁜것이 없다 그것은 오직 그것일 뿐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것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간사의 상식이면서도 동시에 쉽게만 마음먹을 수 없는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 

 

 

161p ~ 187p 이 페이지들의 전반 좋은 내용이 가득하여 모든 문장들을 기록할 수 없음에 아쉬웠다.

75킬로 근처에서 뭔가가 슥 하고 빠져나갔다.
(중략)
그 무렵에는 피로하다고 하는 것은 내게 그다지 중대한 문제는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
피로에 지쳐있다는 것이 '늘 그런 상태'라고 하는
이른바 상태로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육체적 고통마저 거의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중략)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 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무아지경이라는 말이 있다.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종종 경험하기도한다.
어떤것에 극도로 몰입해 아무 생각이 없는것처럼 수행하는 경지.
특히나 마라톤같은 지속적인 고통을 끊임없이 이겨내는 이런 과정은 이런 형태를 체험하기 적합한(?) 환경이 되기도 하는것 같다

많은 때에 우리는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해 집중을 원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저 한 발 한 발에 집중해 내딛는 것
그것에서 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나는 '약간 다른 장소'에 발을 들여놓은 듯했다. ... 철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여운까지 있었다. 거기에는 나에게 뭔가의 내적 성찰을 강요하는 것이 있는 듯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달린다는 행위에 대해서 이전처럼 '누가 뭐래도'라고 하는 단순하게 긍정적인 기분을 지닐 수 없게 됐는지도 모른다.
(중략)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고, 그 나름의 자신감도 생겨났다. 달리길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위의 순간이 주는 내적 성장의 모습이 아닐까.
달리기라는 어쩌면 원초적인 행동에도 어느 이상의 경지에서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의미가 없는 일이란 없다. 의미가 있을 때까지 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일인 것이 분명하다.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시간은 나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중략)
나는 기록에 도전하는 무심한 젊은이도 아니고, 한낱 무기적인 기계도아니다.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는 마음의 태도
달리는 행위에 대단한 목적을 두지 않는다. 다만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확인하며 나의 삶에 활력을 부여한다

- 운동하면 몸짱이 되어야 하고, 글을 쓴다면 책을 내야한다.
 우리가 어쩌면 어떤일을 시작함에 있어 주저하게 되는 많은 이유들은 그 행위를 하는 대단한 경지를을 쉽게 접할 수 있기때문이기도 한것 같다.
이미 달리기로서 높은 경지를 이룬 하루키의 언어는 덤덤하다.
자신의 달리기로 건강이나 기록을 과시하려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주는 내적 영감과 삶의 활력에 대해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 페이지에서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는 동안과 이후의 하루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며 변해가는 마음 심리와 그 이후의 후유증처럼 남는 마음은
한번쯤 어떠한 것에 열중해본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 공감과 교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